사는 이야기

아들의 책상에서

PJaycee 2012. 8. 22. 01:36

 

지하철 막차를 타고 12시가 넘어 터덜터덜 들어온 집..

너무 지치기도 하고 약간 출출하기도 하여 냉장고 문을 열고 뒤졌다.

건진 건 맥주 한 캔과 안주삼아 먹을 반찬용 오징어포 무침.

자리를 찾다가 아들 책상에 펴고 앉았다. 큰아들 책상에는 수학 문제집이 펼쳐져 있다.

별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다. 옆에 놓인 내 맥주캔이 묘하게 어울린다.

 

어느새 마흔을 목전에 둔 나이에 이르러, 여전히 내 젊음에 추호의 의심이 없기는 하지만,

내 인생 전반이 어떻게 지나갔나 싶다.

내가 4학년이던 30여년 전 내 아버지의 모습이, 단편적이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아이에게 그런 모습일까..?

아이를 낳으며 사전적 의미의 아버지가 되지만,

인생사적 아버지가 되는 건 내가 바라보던 그의 자리에 내가 치환되어 들어가는 순간인가 보다.

이제 난 아들의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때가 적지 않다. 사회적으로 active하게 지내고는 있지만,

어느 순간 헐떡이며 돌아앉아 혼자 술 한 잔을 마시는 나의 모습은,

내가 어릴 적 전혀 의미있게 느끼지는 못했으나 아버지에게서 보았었던 것 같은 순간이며,

언젠가 이 순간을 맞을 아들과 시공을 넘어 공유하고픈 순간이다..

 

맥주를 들이키며, 청소년용인 아들녀석의 의자가 약간 불편해져 온다.

이제 성인용과 같은 새 의자를 사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