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이 요새 유행하는(사실은 유행이 거의 끝나가는) 다운 코트를 사주겠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아마 며칠 전 코트를 세탁 보내면서 다른 옷이 없으니 빨리 하면 좋겠다고 한 게 마음에 남았나 보다.
그러나 단호하게 싫다고 했다. 요새 가격이 내려 4-5만 원 밖에 안 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싫다.
몇 번 입을 일 없는 옷들이 주렁주렁 옷장을 채우고 있는 게 싫기도 하고, 새로운 옷차림이 꺼려지기도 해서이다.
나 같은 사람은 패션과 담을 쌓은 사람이지만, 어쩌다 몇 가지 꽃히는 것들이 있다.
아주 오래 전 옛날 초등 저학년 시절, TV 프로그램 수사반장을 보다가 점퍼 자락을 날리며 뛰는 것이 부러워
항상 점퍼의 지퍼를 채우지 않고 휘날리며 달리곤 했었다.
중고교 시절 흰 티를 셔츠 안에 받쳐 입는 것이야 시대적 유행이엇지만, 대학 시절 청자켓, 분홍색 셔츠 등은
나름 나의 패션 코드였다.
대학 시절에는 키가 훤칠한 김노경 교수님이 흰 가운 자락을 휘날리며 걸어다니시는 모습이
옛 선비들의 도포자락 같이 느껴져서 나도 곧잘 따라하고는 했었다.
세월이 가면 사람이 바뀌는지, 나도 분홍색 셔츠보다는 흰색 셔츠가 더 편하고
청바지에도 검은 양말이 더 익숙한 아저씨가 되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지키는 패션 코드는 하나 있다.
못 입을 때까지 오래 입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