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에서 이슈가 되었던 사건 중에 모 지검장의 음란행위 사건이 있다.
지방 어느 소도시에서, 중년의 남자가 음란행위를 한다고 여고생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출동해서 이 남자를 잡은 뒤 조사를 했는데 나중에 그 지역 지검장으로 밝혀진 것이다.
경찰서에서 신분을 확인할 때 이 사람은 처음에 자신의 동생 신분을 가짜로 대었다 들통이 났고
이어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있었다, 자신은 산책 후 쉬다가 봉변을 당했다, 지검장 신분이
압력으로 비춰질까봐 일부러 동생 이름을 대었다는 등의 해명을 해서 사건이 진실게임으로 번졌다.
나는 사실 처음에는 이 사람의 주장을 거의 믿었다. 지검장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행동을 하랴 싶었고
내가 지검장의 입장에서 그런 봉변을 당한다면 황당하겠다고 공감도 되었다.
그러나, 사건이 언론에 크게 회자되며 커지자 드디어 모든 CCTV를 동원한 수사가 시작되었고
길에서 소변을 보았다는 뭔가 석연치 않은 해명이 나오더니 마침내 이 지검장은
(사실 사건 보도 며칠 후 바로 면직되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음란행위를 한 것이 사실이다,
수치심에 죽고 싶다, 정신과 치료를 받겠다, 등의 발표를 했다.
1)
이 사람이 했다는 음란행위가 뭔지를 잘 모르겠지만(길에서 자위행위를 했다는 이야기가 많다)
난 오히려 이 사람이 측은하다. 지검장이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은밀하게 퇴폐업소에서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한 욕망해소 가운데는 정상적인 것 뿐만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까지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소심하게 길에서의 자위행위라니...
물론, 속칭 바바리맨 같은 이상성욕자가 더 큰 성범죄의 첫걸음이 된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부족하고 일부는 왜곡되기까지 한 뉴스 속에서 내가 판단하기로는 이 사람이 길에서 그런 행위를 하다가
여고생에게 '들켜서' 문제가 된, 즉, 소심하게 성욕을 풀려던 상황이었던 것 같아 측은하다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50대 초반의 나이에 남들 보기에 성공한 듯 보이는 인생이지만
성공압박과 경쟁에 찌들려 왜곡되거나 억압받거나 해소되지 못한 욕구에 시달렸을 것 같고,
심심치 않게 문제가 되는 권력자에 대한 성접대 보도에 그런 업소도 소심하게 이용 못했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길에서, 음침한 골목에서, 갑작스레 치밀고 올라온 리비도의 요구에
느슨히 자아의 통제를 풀었다가, 어린 여고생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쌓아온 것들의
파멸이니, 한편으로는 참 어이 없는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참 측은한 일이다. 본능에서 올라오는 욕구를
제어와 억제로만 해결하는 것은 평생을 일관하기 쉽지 않은 법이다.
수치심으로 죽고 싶다는 그의 말이 절대 계산된 수사로 들리지 않고 진심으로 느껴진다.
(물론, 내가 파악하는 세상과 사람의 진심은 적잖이 틀리는 것 같다. 난 처음에도 이 사람 말을 믿었으니..)
가정에서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돈 많은 집 딸과 결혼해 잠자리에서 무시 당하거나 거부 당하지 않았을까?
그 가족들은 그에게 이 죽고 싶은 수치심을 이겨내는 힘이 되어 줄 이들일까, 더 큰 수치심을 줄 이들일까?
2)
이 사건을 보며 또 하나 느끼는 것은 CCTV의 힘과 무서움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임에도
여러 개의 CCTV 영상이 확보되어 사건을 재구성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되는 상황, 우리 집 내 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서 감시에 대한 두려움이 인다.
감시 당함에 대한 불안이 심리적 억누름으로 작용한다면, 어느 순간 사람들이 이 지검장처럼
의외의 이상한 해소법을 찾게 되는 사고가 생기지는 않을까...?
참, 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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