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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문제의 사망진단서

by PJaycee 2016. 10. 6.

요새 백남기 씨의 사망진단서가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의대 4학년 법의학 시간에 사망진단서 작성법을 배우고, 내과 주치의 시절 몇 장의 사망진단서를 써 본 이후

나 자신으로서도 오랜만에 관심을 가져본 사안이다.


이번 논란에서 이슈는 두 가지이다.

1) "심폐정지 - 신부전 - 경막하출혈"로 기술된 사망의 원인

2) "외인사" 대신 "병사"로 선택된 사망의 종류


사망의 원인에 대해서는 명백한 잘못과 논란거리가 있다.

명백한 잘못은 '심폐정지'라는 부분이다. 기자회견을 통해 신부전에 따른 현상을 뜻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그걸 인정한다 해도 "고칼륨혈증"이라고 썼어야 한다. 솔직히 깊은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고

그냥 해오던대로 하면서 발생한 문제일 것 같다. 그러나 전문가는 최신지식이 윤리라고 보면 힐책 받을 부분이다.


외인사/병사 문제는 단순하지 않은데, 왜냐면 이걸 외인사라고 하는 순간 기술 의무가 생가는

좀 곤란한 여러 판단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건 아래의 진단서 양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걸 피하고 싶어서 담당의사 입장에서는 '병사'를 선택하였을 수 있다.

사실 논리적으로 틀리다고만 할 수 없는 부분은, 외상이 원인(遠因)일 경우라도 외인사로 하라는 지침이 있긴 하지만

외인이 있기는 하되 다른 문제가 없으면 stable하게 유지될 사람에 대해 모두 외인사로 하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인 사람이 몇 년째 생존하다가 인플루엔자로 죽었다면?

또는 더 극단적인 예로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입원했던 환자가 병원에서 메르스에 걸려 죽었다면?


물론, 이번 사례의 경우에는 외인사라 함이 옳다는 것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의 중론이다.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이미 소생 가능성이 없고 가족의 연명치료 거부 의사가 명백한데 의학적 인터벤션으로

살려 놓은 상태부터가 이미 어떤 원인의 죽음이 발생하여도 외인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담당의사의 윤리가 실제 힐책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담당의사의 의도와 정권의 의도이다.

담당의사의 의도는 위에 기술된 것과 같이 단순히 난처한 판단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뭔가의 외압?

아니면 뭔가의 소신?

여러 상황을 고려하건대 외압은 아닐 것 같다. 대신 외부의 의도는 전달되었을 것 같다. 이렇게 해 주면 좋겠다는...

그러나 사실 더 큰 의도는 난처한 판단을 피하는 것과 남다른 소신에 의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 소신에는 아마도 자신이 희생하여 대의를 도와준다는 살신성인 의식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병원교수들의 성향으로 추정컨대는 '대의'라는 측면에서 1순위가 병원이고 2순위가 정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의도가 뭔지를 생각해 보면 결국 담당의사의 의도는 실패로 귀결될 것 같다.

정권의 의도는 책임을 물타기하는 것이고, 그러한 물타기 책임은 병원밖에 질 수 있는 곳이 없다.

부검을 강행하려는 정권. 부검을 못 한다면 공권력을 부정한다고 호도하여 책임을 희석할 것이고

부검을 한다면 병원 측에 상당한 책임을 지울 것이다.

내가 예상하는 부검결과 시나리오는 병원감염에 의한 패혈증, 그에 따른 다발성 장기부전이라고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법적으로 병원에 큰 책임은 없지만 사회적 비난은 병원이 상당 부분 분담하여 감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라면, 현재 상황은 물론 최종적으로 부검을 하게 되든 못하게 되든, 

담당의사가 본인의 희생으로 구하고자 했던 대의 가운데 정권은 구할지언정 병원은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 정권은 이런 문제에 관해 그다지 의리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